그 때 회사의 운명이 다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.!

기사입력 2021.04.01 11:08 조회수 543
댓글 0
  • 페이스북으로 보내기
  • 트위터로 보내기
  • 구글플러스로 보내기
  •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
  • 기사내용 프린트
  • 기사 스크랩
  • 기사 내용 글자 크게
  • 기사 내용 글자 작게

 

마침내 외환은행 출신의 관리인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.

저희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회의실에 도열해 있었습니다.

근엄한 모습의 관리인이 들어서자 관리전무님(관리과장도 있는데 왜 나이 많은 전무님이

사회를 자청하셨는지 의문?)의 사회로 훈시가 시작되고

부사장님(대표이사님의 직책)은 어떻게 하든 관리인의 환심을 사려고

억지 우슴과 몸들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. 마치 관리인의 입에서 엄청난 비전이라도

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그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.

제가 1996년 4월 독일 출장 후 무염산보고(#매트리스47,48.2021.3.7.3.8), 1997년

12월 8일 국내2위의 스프링 전문공장부도 후 인수보고(#매트리스53.2021.3.14), 1998

년 에 저한테 그 공장의 인수가능여부(#매트리스60.2021.3.21참조)를 뒤늦게 확인

하신 분이 바로 지금 외환 은행 출신 관리인 앞에서 허둥지둥 하시는 바로 그 부사장님이신

겁니다.

부사장님은 지금 절박한 심정으로 그 관리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계시지 만 그게 무슨

소용이 있겠습니까!

오히려 부도 난 회사의 대표로서 죄 없이 도열 해서 마치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고 있는

것 같은 직원들의 자존감만 떨어뜨리고 있는 것 입니다.

얼마나 많고도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까?

그 골든 타임을 다 놓치고 지금 에서야 자리보존을 위해 몸소 자세를 낮추시는 그 모습에서

전 회사의 운명이 다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
은행관리인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기억도 안 납니다.

단지 마치 전쟁에서 이긴 적장 같은 태도와 그 인상 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.

부사장님! 좀 잘하셨어야지요.

이 얼마나 비참 한 일 입니까?

그 순간 의 안일 한 선택이 대한민국의 침대선진화를 못 이룬 슬픈 운명

이었습니다!

제 눈에는 부사장님의 거취가 보였습니다.

그리고 얼마 후 인사발령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사내에 퍼졌습니다.

그 해(1998년) 11월 하순 (IMF 발생1년 후) 저는 공장(경남 함안)회의에 참석합니다.

제 옆에는 관리전무님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.

이어집니다.

#잠웨이 임영일 010 5340 0124

 

#본 기사 내용은 임영일씨의 기고를 올린 것입니다.

 


 

[특집팀 기자 hjw9375@naver.com]
  • 페이스북으로 보내기
  • 트위터로 보내기
  • 구글플러스로 보내기
  •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
<저작권자ⓒ소비자보호신문 & www.cpnews.co.kr 무단전재-재배포금지>
댓글0
이름
비밀번호
 
 
회사소개 | 제휴·광고문의 | 기사제보 | 고객센터 | 저작권정책 | 개인정보취급방침 | 청소년보호정책 | 독자권익보호위원회 |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| RSS top